[암센터 첫 기록]암병원에서 느낌 보험의 필요성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 나는 보험이 꼭 필요한지 잘 몰랐다.

보험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를 그저 쓸모없는 지출처럼 여겼다.

나는 아직 젊었고, 병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필 내가 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 들어가 보니 현실은 달랐다.
나는 재수없게 암에 걸렸고, 실제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암 치료는 병만 견디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돈과도 함께 싸워야 하는 일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유방센터 입구

5%만 부담하면 된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우리나라는 암환자를 포함한 중증 질환자에게 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

대표적으로 ‘산정특례’가 적용되면 치료비의 대부분을 국가가 부담하고, 환자는 약 5%만 내면 된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는 제도가 맞다.

하지만 병원 안에 들어가 보니, 그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치료가 시작된 이후부터 더 선명해졌다.

치료는 시작보다 그다음이 더 무섭다

처음에는 본인부담금 5%라는 말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치료가 시작되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따라붙는다. 추가 검사, 약값, 선택 진료, 몸에 좋다는 음식과 영양제, 병원을 오가는 시간과 생활비까지.

하나하나는 버틸 만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시간이 쌓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처음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던 비용이, 어느 순간부터는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때 처음 실감했다.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치료는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도 지치고 가족도 지쳤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괴로웠고,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수납창구 앞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노부부

암환자가 이렇게 많다니.
암병원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 역시 그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치료를 받으러 왔지만, 내가 가장 먼저 서게 되는 곳은 수납창구였다. 번호표를 뽑고 내 순서를 기다리며, 치료보다 먼저 치료비를 정산해야 했다.

그 현실은 병원 수납창구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사정도 완전히 숨겨지지 않았다.

치료비 수납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나는 앞에 서 있던 한 노부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납 직원은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절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손에 쥔 채, 무엇인가를 확인하듯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는 그의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알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상황이 충분히 전해졌다.

직원은 결국 병원 안에 있는 사회복지센터를 안내했다. 치료비나 복지제도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를 들었고,
이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내 주제에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모두가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내가 가장 힘들었다.
남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볼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가 넣어둔 보험이 있으니 치료비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을 거라고는 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나오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안도하기보다는,
혹시라도 예상보다 더 많은 치료비가 발생해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 컸다.

보험회사는 다 도둑놈이고, 보험은 쓸데없는 지출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보험 하나가 간절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안도는 단순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암 진단 이후 나는 한화손해보험과 한화생명보험을 포함한 여러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한화생명보험 CI종신에서는 암 진단금 4천만 원이 나왔고, 한화손보에서는 암 진단금 1천만 원과 함께 실손 통원비와 입원비, 암수술비, 암입원비, 방사선약물치료비가 여러 차례 나눠 지급됐다.

두 보험사에서 받은 보험금만 해도 거의 1억에 가까웠고, 다른 보험까지 포함하면 암으로 인해 지급받은 보험금은 총 1억이 넘었다.

그 돈은 단순히 통장에 찍힌 숫자가 아니었다.
그건 버틸 수 있는 시간과 선택지를 함께 주는 돈이었다.

나는 다행히 치료를 받는 내내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부터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때 처음 알았다.

보험은 쓸데없는 지출이 아니라,
삶이 무너질 때 바닥을 받쳐 주는 장치라는 걸.

남의 불행을 보며 안도한 내 마음의 충격

나는 암센터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검사를 기다리며 병원 안을 오가다 보니
다른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웠다. 그런데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내 옆 검사실에는 소아암으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여덟 살 아이가 있었다.

복도에서는 통증을 참지 못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던 사람도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숨죽여 울고 있는 중년 여성을 마주쳤다.

아픈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그래도 난 저 정도는 아니야.

나는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저 아이보다는 낫고, 저 사람보다는 덜 아프고, 나는 아직 괜찮다고.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남의 불행을 보며 안도하고 있었다.

근데 그건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그곳에서는 다들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는 걸.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고, 그보다 조금 덜하다는 이유로 겨우 안도했다.

그걸 반복하면서 하루를 버텨내는 곳, 암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