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센터 첫 기록] 암센터 첫날 유방암 검사 기록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내부

2012년 10월 초 내 나이 만 25세,
나는 대구 이경외과에서 받은 유방암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로 갔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니 큰 병원으로 가면 곧바로 의사를 만나 치료를 시작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대형병원의 첫날은 내가 생각했던 흐름과 전혀 달랐다.

진료가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등록부터 MRI, CT, PET, 혈액검사, 초음파 같은 추가 검사를 먼저 소화해야 했다.

대형병원 첫날은 진료부터가 아니었다

역시 대형병원은 체계적이었다.
간호사가 알려준 순서대로 움직이면 됐다.

하지만 그 체계가 환자인 내 마음까지 정리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병원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동네 병원에서 조직검사 결과를 듣는 것과, 대형병원 암센터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전자는 진단이었고, 후자는 현실이었다.

검사보다 더 길었던 기다림..

검사 종류는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MRI, CT, PET이 줄줄이 이어졌고, 그 사이에 혈액검사와 초음파까지 더해졌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초음파실 검사는 늘 환자가 많다.

검사실을 옮겨 다니며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지금도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검사 자체보다 기다리는 시간이다.

대형병원에서는 무엇이든 질서 있게 돌아갔다.
그만큼 대기 시간도 길었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지치고 멍해졌다.

긴장이 풀리자 비로소 보인 사람들

검사보다 기다림이 더 길어지자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옆 검사실에는 소아암으로 힘든 투병을 하면서도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복도에서는 아픔을 참지 못해 의사에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높이던 노란 머리 외국인 환자도 보였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는 환자의 눈을 피해 숨죽여 울고 있던 어떤 중년 여성을 마주쳤다.

그날 처음 알았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그날 내가 처음 배운 건 병원의 공기였다

암센터라는 곳은 단순히 검사를 받고 진료를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각자의 두려움과 피로와 사정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장소였다.

나는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내 병을 확인하러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거대한 현실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날 가장 힘들었던 건 몸보다 마음이었다.
검사 일정이 많아서 지친 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버거웠던 건 병원 전체에 흐르던 공기였다.

누구 하나 크게 울지 않아도,
누구 하나 큰 소리로 절망을 말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분명한 긴장과 불안이 깔려 있었다.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고,
결과를 기다리고,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첫날은 치료를 시작한 날이라기보다 현실을 배운 날에 가까웠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암센터의 공기와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날 나는 치료보다 먼저 현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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