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먼저 다른 걱정이 밀려왔다.
내 머릿속에 가장 크게 울린 말은 단 하나였다.
나 돈 없는데 어쩌지.
그 순간,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20대였고, 아픈 몸보다 감당해야 할 현실이 더 무서웠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게 아니다.
유방암이라고 확신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코피가 나고, 몸살처럼 몸이 무거웠고, 가슴에는 손가락만 한 멍울까지 만져졌다. 이 정도면 분명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병원을 쉽게 가지 못했다. 정말 괜찮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두려워하던 병명일까 봐,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내 삶이 정말 다른 방향으로 꺾여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때의 나는 20대였고, 아직 내 삶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열심히 경력을 쌓아야 했고, 하루빨리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프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 일로 인해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뒤처질까 봐 더 두려웠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몸보다 마음을 먼저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못 본 척한다고 해서 내 몸이 보내는 신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추석 명절 목욕탕에서,
나는 결국 들키고 말았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시간은 추석 명절에 멈췄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갔던 날,
나는 결국 애써 숨기고 있던 몸의 이상을 들키고 말았다.
엄마는 육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내 몸의 변화를 바로 눈치챘고, 나는 그 순간 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는데도,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아닌 척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몸의 이상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다.
괜찮은 척하고, 모르는 척하고, 조금만 더 버티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들킨 그 순간은 단순히 증상이 드러난 순간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 오던 현실을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 가슴의 몽우리를 만져보고 화들짝 놀랐다.
나는 그 반응이 무섭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혼자 아닌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아주 조금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결국 엄마의 손에 이끌려 대구의 한 여성병원에 가게 되었다.

괜찮을 거라 했잖아!
그런데 전화는 너무 빨리 왔다
병원에서는 유방 촬영과 맘모톰 조직검사를 진행했다.
원장님은 검사 내내 웃으며 차분하게 대해주셨고, 그래서 나는 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을 거라고, 젊은데 무슨 일이 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쯤 뒤에 나온다고 했다. 나는 다시 대구 본가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바쁜 일상을 이어갔다.
원장님의 괜찮을 거라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어쩌면 정말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아직은 현실이 되지 않은 일처럼 잠시 미뤄둘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화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서울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점심시간,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더니, 3일도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일 때문에 당장 갈 수 없다고 말했지만, 간호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과가 좋지 않아요. 다른 건 다 미루고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그 말은 끝까지 돌려 말한 표현이었지만, 나는 이미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전화 한 통으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원장님의 말이 틀렸다기보다, 그 말을 마지막 희망처럼 붙잡고 있었던 내 마음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그 말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디에도 향할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방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유방암 진단을 전화로 통보받을 때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아주 현실적이었고, 내 행동은 오히려 이상할 만큼 이성적이었다.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딱 한 문장만 내뱉었다.
엄마, 병원에서 빨리 오래.
엄마는 생각보다 눈치가 빨랐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흐느끼는 목소리로 나를 붙잡아주었다.
엄마가 너 암보험 빵빵하게 넣어놨어. 아무 걱정 하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을 조이고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죽음보다 먼저 현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병원비는 얼마나 들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건지.
내 머릿속에 가장 크게 울린 말은 결국 단 하나였다.
나 돈 없는데 어쩌지.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암 진단을 받으면 가장 먼저 죽음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나는 달랐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도, 감당해야 할 현실이 더 무서웠다.
나는 겨우 20대였고, 열심히 일해도 늘 넉넉하지 않다는 불안과 열등감을 마음 한구석에 안고 살았다.
그래서 유방암은 내게 병의 고통보다, 내 삶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바로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할 만큼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고, 그 점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전화 한 통으로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업무를 이어갔지만, 머릿속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지, 어디까지 포기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생활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나 자신 그 자체였다.
내가 힘들게 쌓아가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듯한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결국 사장님께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비로소 내 현실이 선명하게 체감되었다.
나는 이제 유방암 환자다.
그렇게 퇴사를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도 슬펐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억울했지만, 아니라고 애써 부정해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멈춘 것 같았다
퇴사를 결정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병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친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그 흐름에서 멈춰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라기보다 억울함에 가까웠다.
나는 술담배도 하지 않았고, 남들처럼 마구 놀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고, 힘들어도 참고 버티면 언젠가는 나도 원하는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왜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전에 멈춰 서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더욱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쓰라렸던 건, 내가 그토록 붙잡고 있던 삶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중간이라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다 살아보지도 못한 나이에, 벌써 포기부터 배워야 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삶의 궤도에서 밀려난 듯한 기분이 오래 남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 살아봐라. 네 마음대로 다 되는 일이 있나.
그래, 엄마의 말이 맞았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모든 불행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왔는데도, 마치 세상에 속은 것 같은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몸도 엉망이었고, 마음까지 비뚤어져 가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럼에도 내 삶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병원과 집을 오가야 했다.
그 사이에 친구들은 정말 빠른 속도로 승진, 이직, 결혼 등 각자의 삶을 꾸려 갔다. 내 인생은 세상에서 강제로 밀려나 멈춰버렸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삶은 멈춘 것이 아니라,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 치료는 잘 끝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주 천천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따뜻하게 돌봐주었고,
의료 시스템은 돈 걱정 하던 내게 큰 위안이 되었고,
여러 제도들은 내가 다시 사회에 당당히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
물론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단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참 많은 것을 누리며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인데 모두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악기를 배우고, 가고 싶은 곳들을 떠올리며 여행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약해진 몸과는 달리 내 삶은 오히려 조금씩 더 풍성해지고 있었다.
치료를 마친 뒤에도 예전처럼 밤샘 작업이 많은 PD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대신 내가 오래 관심을 가져왔던 방향으로 흘러 결국 여행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삶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두웠던 내 인생도 지나고 보니 그저 불행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
무너진 줄 알았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계속 살아냈고,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참 먼 길을 돌아 왔지만 아직도 내 삶의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