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항암치료 후, 내 몸에 일어난 변화들

항암 치료는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이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는 3주에 한 번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항암주사를 맞고
대구 집으로 돌아와 회복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수없이 들었던 부작용들.
하지만 막상 내 몸에서 시작된 변화는
그 어떤 설명보다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항암 다음날, 빨간 소변으로 시작됐다

첫 항암 다음 날 아침,
나는 피처럼 붉은 소변을 보았다.

처음엔 놀랐지만,
며칠 지나니 그게 항암 약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약 3일 정도 그런 상태가 이어졌고,
몸은 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딸꾹질, 방귀, 트림 등
이 사소한 생리현상조차 조절이 되지 않았다.

화장실은 계속 가고 싶은데
막상 소변을 본 뒤에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몸 어딘가에 계속 고여 있는 느낌.

그리고 이상하게도
물에서 비린내가 느껴졌다.

결국 물조차 역겨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3일째부터 시작된 급격한 무너짐

항암 후 3일째.
그때부터 몸은 눈에 띄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 수시로 잠들고
몸은 점점 붓고, 면역은 급격히 떨어졌다

배는 고픈데 위는 꽉 묶인 것처럼
답답해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억지로 먹은 음식은 결국 다 토해버렸다.

그리고 밤이 되면
위장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어떤 날에는 토할 것이 없을 때까지 토했고,
노란 위액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연두색으로 변했고,
마지막에는 피까지 섞여 나오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매일 밤, 반복되는 이 통증이 두려웠다.
그래도 가족들을 깨울까 봐 조용히 방을 나와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숨죽이고 있는 날이 많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먹었다

사람들은 항암을 시작하면
건강한 식단이랍시고
고기를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데
나는 오히려 고기를 꾸준히 먹었다.

집에서는 나를 위해
늘 질좋은 수육과 채소로 준비해 주었다.

소화를 못시킨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늘 스스로를 달래며 최대한 먹으려고 했다.

“오늘 먹은 건 비싼 소고기야, 절대 토하면 안 돼”

구토로 다 게워내는 날에도 스스로를 달랬다.

“괜찮아, 그래도 비싼 고기 맛은 봤잖아.”

하지만 식사를 가장 방해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항암치료 전에 치료하지 못한 사랑니였다.

썩어가던 사랑니 때문에
잇몸이 붓고 다른 치아까지 약해지면서,
아침마다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결국 나는
사과, 바나나, 당근, 양배추를 넣어 만든
주스로 식사를 대신했다.

사과의 상큼함이 비린 맛을 잡아주어서
먹기가 편했는데
나중에는 우유와 견과류까지 더해
매일 아침의 통증을 견뎌내었다.

나는 사랑니와 충치 치료를 미루고
항암치료를 시작한 것을 크게 후회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치과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술이 제한되었고,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항암 자체도 힘든데,
치통과 구토까지 겹치니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일상생활도 어려웠다.

치과 치료는
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모두 끝난 뒤,
1년이 지나서야
스케일링과 사랑니 발치, 충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환자의 모습’

항암치료 후 정확히 15일이 지나던 날,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내 머리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였기 때문에,
중간에 듬성듬성 빠지는 게
충격적일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두피도 생각보다 시리고, 아파서
잠을 자다가도 앓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래서 완전히 빠지기 전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집 앞 미용실로 향했다.

차라리 먼저 삭발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미용실 원장님께 웃으며 얘기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해서요. 싹다 밀어주세요.

그러나 나의 사정을 들은 미용실 원장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이발기를 한참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삭발 대신 단정한 커트로 머리를 정리해 주셨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젊은 사람이 크게 아픈데도
이렇게 잘 버텨내는 모습이 참 대단해요.


이 병은 오래 싸워야 하는 병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몇 날 며칠 앞서서
그 힘든 감정을 미리 끌어올릴 필요는 없어요.

빠질 때 빠지더라도,
그때까지는 조금 더 가볍게 지내봐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
이렇게 뜻밖의 응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모자를 사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 길로 나는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로 향했다.

많이 돌아다닐 수는 없었지만
원장님 말대로 새로운 커트머리에
기분 좋게 모자를 쇼핑했다.

커트머리라고 해도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실내용, 비니, 외출용 모자를 여러 개 샀다.

그러고도 걱정이 됐는지
엄마는 가발을 사야 하지 않겠냐며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방실방실 웃으면서
안 사도 된다고 했다. ​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새로 산 모자들을 써보았다.

호빵처럼 부어버린 얼굴에
단정히 다듬어진 커트머리를 보며
원장님이 해준 말이 생각 나서 계속 웃게 되었다.

모자를 바꿔 쓸 때마다 호빵이 더 못생겨 보였지만
그래도 모자를 쓴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철이 없다 욕먹어도 괜찮다.
그저 너무 슬퍼할 필요 없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잖아!
겨울에는 모자를 2~3개 겹쳐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가발은 필요 없다.

첫 항암 후 커트한 모습